토브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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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on “4강 미운 3살! 말 안듣는 7살! 반항하는 10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제3강. 자녀교육의 실패자 다윗과 엘리! 무엇이 문제였나?
    한 인격체인 사람을 교육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이 낳고 키워온 내 자녀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번 강의를 통해 성경에 나타난 자녀교육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들었다. 강의 내용중 인상적인 부분은 아담의 족보에서 가인의 이름이 빠져있고, 가인의 족보는 별도로 묘사된다는 점이었다. 보통 히브리어로 ‘톨레돗트’라고 하는 이 족보가 가진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깊이있게 읽고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러한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로움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가인이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하는듯한 저자의 의도는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사람,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끊어진 사람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또한 경각심을 가지게 해 준다.
    성경의 기록들은 자녀교육의 성공과 실패의 모델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물론 노아의 경우처럼 특별한 묘사없이도 그의 세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포함해 가족 모두가 노아를 따라 방주를 짓는 일에 순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여 생각해 볼 때 사실 그 순종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음도 알수 있게 된다. 반면에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에서처럼,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자녀교육에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곧 하나님의 사람은 단순히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가만히 두면 불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담, 가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 엘리와 다윗, 이어서 디모데에 이르기까지 자녀교육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의 모델들은 성경 속에 많은 비중을 가지고 등장하는데, 이것은 자녀교육이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실 때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 계승하는 방법을 통해 믿음을 선사하신다. 그러므로 부모의 역할은 자녀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자녀의 교육은 부모가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믿음을 위해 신실한 믿음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며, 자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믿음으로 사는 모습으로 본이 되는 교육만큼 효과적인 교육의 방식은 없을 것이다.
    엘리 제사장이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는 삼상 3:13b의 말씀에서 ‘금하지 아니하였다’라는 히브리어 ‘카하’가 ‘책망하여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선다’라는 뜻을 가졌음과 다윗이 4째 아들 아도니야에게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고 한 왕상 1:6b의 말씀에서 ‘섭섭하게 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 ‘아짜브’가 ‘성내거나 고통스럽게 만들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강의를 통해 들었다. 이를 통해 자녀들에게는 시기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제대로된 교육과 훈계는 자녀교육의 필수요소임을 알게 한다.
    강의를 통해 오늘 한국교회의 성도들(물론 나 자신도 포함되지만)이 과연 자녀교육을 위해 얼마만큼 바르게 노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믿음을 계승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자녀에게 전달하도록 우리 가정을 허락하셨음을 되돌아보며 믿음으로 더욱 본을 보이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좋은 강의를 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2. 제4강.
    1. 성경적 교육의 출발 : 창조와 죄
    성경적 교육의 출발점은 창조와 죄의 문제이다. 창세기 1장 1절은 ‘베레쉬트 바라’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 말은 ‘태초에 창조하시니라’로 번역된다. 여기서 ‘바라’라는 말은 ‘창조’라는 뜻과 더불어 ‘질서를 세우다, 기초를 놓다’라는 뜻이다. 이 ‘질서’는 ‘권위 질서’를 의미하며,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모든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공동체 속에서의 권위 질서는 계속해서 무너져간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먼저 가정부터, 그리고 교회부터 그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2. 죄와 고집과의 관계
    이 세상은 사회적 관점에서 죄를 인식하지만, 사실 죄는 창조를 바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죄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따라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죄이다. 이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넘어서려 하는 행위이기에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집과 집념을 바르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고집이 센 것도 죄이다. 고집이란 개인적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붙들고 가는 것을 말하며, 집념이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관되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집은 죽음을 가져온다. 출애굽 당시의 바로처럼, 고집은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욕구에 대해서는 No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Yes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 미운 3살~
    8개월 때부터 보통 고집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것을 받아주면 미운 3살이 된다. 신병훈련소의 짧은 기간 동안 훈련에도 젊은 청년들이 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훈련은 필수적인 것이다. 어려서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죄와 고집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순종하는 3살을 만들면 복종하는 7살이 되고, 효도하는 10대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미운 3살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 안듣는 7살이 되고 반항하는 10대가 된다. 반항하는 10대들은 보통 자기 세계에 갇혀 살고, 부모와의 소통이 단절된다. 부모가 자신의 삶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날 초4병, 중2병으로 인해 부모들이 힘들어 하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보통 반항하는 것이 사춘기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춘기의 특징이 아니라 죄의 특징일 뿐이다. 사춘기 시기의 다윗과 요셉과 뜻을 세운 다니엘을 보라. 그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절제력도 뛰어났다. 사춘기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은 학문적 샘플링의 결과일 뿐이다. 사춘기가 고무줄인가? 사춘기의 시기가 점점 내려가고 변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학문적 접근만으로는 사춘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 주신 뇌는 6~7세경에 완성된다. 이 이전의 시기에 성경적, 히브리적 세계관으로 교육하지 않으면, 세계관의 전쟁 속에서 아이들은 방황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학문적 Data는 절대진리가 아니다. 따라서 성경적 필터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문적 이론이 ‘과연 그런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과 검증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세계관의 전쟁에서 신앙적 교육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모범적 10대들은 달랐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적 교육으로 양육받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공부하고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우리의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 아니라 세속적 학문과 이론이 중심이 되어 버렸다.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그리고 이제라도 세상을 거꾸로 거슬러 어른부터라도 성경적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도 지금부터라도 성경적 세계관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 히브리적 사고와 성경적 세계관 교육은 이제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든 교회들의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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