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요한복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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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on “8강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이해를 위한 창세기 1장 1절 연구2

  1. 8강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이해를 위한 창세기 1장 1절 연구-2

    2. 빠라 – 창조
    히브리어는 동사가 중요하다.
    1) 질서를 만들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지은 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를 깨드린 죄이다. 찬양을 드릴 때에 무슨 악기를 사용해도 되나 질서를 깨뜨리면 안 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수직적인 관계를 깨드린 것이다.
    2) 창조의 3가지 단어
    1> 빠라 – 무에서 유로 만드는 창조. 성경의 창조. Creato(창조) ex(from) Nihilo(무).
    2> 아사 – 유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 재창조,
    3> 야체르 – 사람을 창조할 때 창조.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생기의 원어의 뜻은 숨이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니 흙으로 만든 사람이 생령 즉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3. 엘로힘 – 하나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81가지이다. 구절마다 가능마다 다르다. 이름에 따라서 문장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 이름 엘로힘은 복수이다. 엘로힘은 이방신들에게도 사용하였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하나님께는 사용하면 안 된다. 삼위일체는 구약은 희미하나 신약은 분명하다.
    1) 창 1:26 :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형상, 모양대로.
    우리가 우리는 복수이다. 삼위는 세 가지 위치를 말한다. 아버지의 위치, 아들의 위치, 성령의 위치를 말한다. 일체는 위치가 셋인데 본질은 essence 하나이다. 다시 말해서 3 person 인격은 셋인데 본질은 하나이다. 이것이 2000년 동안 내린 결론이다.
    2) 마 28:19-20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셋인데 복수이며 이름은 하나 단수형이다. 즉 본질은 하나이다. 라는 것이다.
    3) 고후13:13 : 주 예수 그리스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4. 하솨마임 웨엩 하아렛츠 – 천지를
    하솨마임은 하늘들, 천들이다. 복수형이다. 지구가 있고 하늘이 있으며 태양계가 있고 우주가 있는 곳을 말한다. 태양계의 하늘보다 원어는 우주를 말한다. 그 위에 대양이 깊은 위에 있는데 종말에 대양의 비가 쏟아질 것이다. 노아의 비는 지구 위의 비이며 종말에는 대양에서의 비이다. 하아렛츠는 지구를 가리키는 땅을 말한다.
    하나님의 눈은 땅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눈이 머물다. The image of God. 기독교 세계관이 하늘들까지 넓혀져야 한다. 우주가 끝나는 지점에서 영원까지 가야 한다.

    – 소감문 =
    계속해서 창 1:1절에 나타난 태초에 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태초의 개념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해를 접근하면서 그 깊이와 넓이와 이해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 우주의 기원에서 영원까지 나아가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행성 가운데 지구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이곳에 머물게 하신 것은 크나큰 은혜요 감사이며 영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2. 과목 / 원전요한복음 1
    과정 / 석박사
    제출자 / 조기룡
    제출일 / 2019년 9월 20일

    1강 Being과 Doing
    1.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신약 27권 중에서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있으며 구약이 사복음서에서 완성이 된다. 다른 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은 독자적으로 기록된 것이 92% 차지하며 요한복음을 이해하면 구약전체를 완성하고 신약을 이해하게 된다.
    2. 명사형에서 동사형으로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 목회와 신학을 말해주고 있다. 미래의 기독교교육과 목회는 동사형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요한복음을 알아야 성경 전체를 보는 것이다. 요한복음을 제 4복음이라 부르며 이사야 53장을 제 5복음서라 부른다. 요한복음을 보면 명령형 교육에서 동사형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사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 목적, 계획을 찾기 위해 성경을 배우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방법론이 아니다. 기독교교육은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가 우리의 관심이다. 하나님이 주도하도록 해야 하며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관심은 한반도가 전 세계의 선교의 메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한복음은 우리의 관심 즉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3. 내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Being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즉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존재가 되는가이다. Doing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역, 어떤 일을 하는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Doing도 중요하지만 ‘Do your best in christ’ Being이 되어야 한다.
    4. 하브루타의 본질
    하브루타 교육의 중요한 점은 유대인 교육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잠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하브루타, 테필린, 학가다 교육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가르치는 교육이다. 하브루타 교육의 본질 문제는 어떤 존재가 되는가이다. 첫째는 관계성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서로 돕는 것이다. 둘째는 리더십 즉 지도력이다. 서로의 Being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6. 하브루타의 방법
    토론(소통)과 설득이 방법론이다. 토론이 근본이 아니라 관계, 리더십 방법론이 소통과 설득이다. 쉐마 즉 듣는 훈련부터 한다. 진짜 말은 소통과 설득이다. 내가 아는 것을 서로 주장하면서 서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소통이다.
    7. 결론 /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나님의 의도를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2강 예배관 1

    1. 총론
    1) 토치 1 . Torch (요 4:23-24) = 예배관
    예배의 혁명적 변환
    여기에서 구약 수 천 년 내려온 히브리인들의 예배가 바뀌어 진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이다. 요한복음 4:1절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며 목마름으로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 물을 달라 한다.
    어떤 환경에서 일어나는가? 획기적 사건 속에 여인이 많이 나타난다. 구약의 남자 중심에서 예수님께서 오신 후 여자들은 숫자에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 히브리식 사고의 체현, 예수님의 위대한 혁명과 전환점으로 신약에 전체는 아니지만 거의 중심적으로 동원되는 소외된 이들, 버림받은 이들이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낮은데서 부터 위로 간다. 마지막은 골고다 언덕이다. 올라가는 복음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기 – Christmas = Christ + mas
    Christ는 기름 부은 사람을 말한다. 성경에서 기름 부은 사람은 제사장, 왕, 선지자이다, OT에서 기다린 메시아이다.
    Mas의 의미
    (1) 예배 (축제) : 초대교회는 성탄절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황제를 숭배한 날짜가 12월 25일이다. 태양을 향해 숭배하는 축제일이다. 특히 소아시아 지역 에베소와 같은 지역에서 심하였다. 이날에 기독교인들도 안 나가면 죽으니 나가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축제를 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죽은 후 12월 25일은 없어지고 예수님을 축제하게 된 것이다.
    (2) 만남 : 크리스마스는 축제도 해야 하지만 말구유에 오신 것은 이 땅의 구원을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축제도 있지만 만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인가?
    요한복음 23절 끝 절에 “……찾으시느니라.” 우리는 영과 진리는 잘 알고 있으나 영과 진리는 내용이고 결론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찾는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배는 성공되어야 한다. 예배하는 자를 찾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마르다에서 마리아를 칭찬한 것은 말씀을 듣는 예배 자를 찾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엔 프뉴마티(in spirit) 영(성령사역) +(카이 and 그리고) + 알레데이아(truth) 진리(말씀사역) 이다.
    구약의 제사는 죽은 제물을 드림
    예배는 잡는 것이 중요하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죽은 제사이다. 구약의 예배는 죽은 짐승을 잡아 성소와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이로 말미암아 죄를 사함 받았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배가 중요하다. 다른 것은 두 번째 사항이다. 구약의 전쟁도 군사훈련을 하고 무기를 준비하고 사령관이 판단을 하는데 마지막으로 제사장에게 와서 물어본다. 하나님의 백성의 전쟁은 성전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응답받고 지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하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 듣는다. “뽕나무 위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거든” 예배가 가장 중요한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의 제사의 근본을 변혁시키신다. 혁명적 사건이다.
    그리심 산에서는 어떤 예배를 드리는가? 이는 성령사역 : 영만 강조하며 열광적으로 드린 예배
    열광적인 예배인 오순절 예배 즉 성령만 강조하는 예배를 드린다. 지금도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린다. 오므리 시대부터….. 영을 강조하며 신약에서 성령인데 팔에 피가 나도록 자해를 하며 뜨겁게 불을 강조한 예배이다. 수가성 여인이 그리심 산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물 길러내려 온 시간은 물을 기르는 시간이 아니다. 소외된 여인이며 불쌍한 여인이다. 예수님은 우물곁에 앉아 물을 달라 하신다. 기독교의 사랑은 관심이며 배려이다. 여인이 필요한 것은 물이다. 이 여인과 눈높이를 맞추신다. 감히 랍비가 물을 달라고 하는가 반문한다.
    예루살렘 에서는 어떤 예배를 드리는가? 말씀사역 : 진리만 강조한 예배
    예루살렘 예배는 진리(말씀)만 강조를 한다. 이 여인과의 사랑과 관심과 배려(하브루타)를 통해서 토론하며 이야기해서 내가 필요한 것을 그에게 설득을 한다. 그는 나를 통해 공동체로서 현재 이야기하는 관계이다. 주님은 관계의 문제를 다루신다. 이것이 히브리인 교육방법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인격적인 사랑과 존중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너희는 영을 강조하는 예배만 예배가 아니다. 예루살렘 예배는 말씀만 강조하는 예배가 다는 아니다. 예배는 장소가 중심이 아니다. 그리심인가? 예루살렘인가는 아니다.
    예수님의 예배관: 영과 진리로 관계 안에서 드리는 예배
    예배의 본질인 예배관이 바꾸어야 한다.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성령 사역이 예배에 중요하다. 예배에 불이 붙어야 한다. 예배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23-24절을 통해 예배 관을 바꾸신다. 유대인의 제사 개념이 예배의 개념으로 바꾸신다. 참 예배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영적예배인데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가 바꾸어져야 한다. 본질이 너무 훼손되었고 형식화되었다.
    예수님은 예배의 개념을 바꾸신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 아니라 형편없는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역사가 바뀌는 특히 소외된 자, 가난한 자, 눌린 자 , 밀려난 자 주님은 이들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3강 예배관-2

    예수님께서 수 천 년 내려온 히브리민족의 예배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준다. 즉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사역과 말씀사역이다. 로마서 12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예배를 구체화 한다. 즉 예배의 방법을 말한다. Torch 1이 확실해야 한다.
    특주> 사도바울의 예배관과 예배 방법을 소개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1)하나님이 기뻐하시는 2)거룩한 3)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도바울의 예배관과 예배 방법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2) 거룩한
    3) 산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 원어의 뜻은 ‘합당한’ ‘합리적인’이라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2) 거룩한 / ‘흠이 없는’ ‘순전한’ 의미이다. 예배드리기 전에는 흠이 있으나 예배드리기 전에 회개해 한다. 한금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을 해야 한다. 과부의 두렙돈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주님 앞에 제물이 거룩하도록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후서에서 기도하면 거룩해 진다고 한다. 세상의 거룩하지 못한 돈이나 제물이 있겠지만 바울은 기도하면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3) 산 / 헬라어 “ζῶσαν” 살아있다는 것이다. 제물로 드리라 ‘θυσίαν‘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요한복음의 예배의 본질은 영과 진리이며 이를 바울은 구체적으로 예배 관에서 구약은 죽은 제물로 예배를 드렸으나 신약은 제물을 드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즉 전인격의 몸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예배는 영적예배이며 예수님은 예배 관을 바꾸시고 영과 진리로 드리며 사도 바울은 몸을 제물로 드리는데 구약은 죽은 짐승으로 드렸으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부분적인 것을 말하여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히브리 사고의 통전적인 사고를 말한다.
    세상은 어두워져도 영과 진리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예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아버지가 찾으시는 것이다.

    4강 요한복음 기록목적

    2) 토치 2. (요 20:30-31) : 목적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은 30절 “다른 표적” (헬, 알라 세메이아) 이 많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적과 표적을 같이 쓰이기도 하나 표적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표적은 신적인 요소가 들어갈 때 사용한다.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적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다.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이 나온다. 요한복음의 7가지 표적의 의미와 해석이 있는데 1차적인 의미는 드러난 의미로 표면적인 의미를 말한다. 드러난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요한복음의 표적 7개가 제 1차적인 의미가 있다. 보자말자 드러난 의미이다.
    2차적인 의미는 이면적인 의미로 숨겨진 의미가 있다. 첫째는 31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다. 에고 에이미……I am 나는…….이다. 구약에서는 YHWH로 신성 4문자이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어야 하는데 스스로 하나님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7번 에고 에이미는 요한복음을 풀어내는 torch이다. 둘째는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이다. 요한복음의 표적 7개는 에고 에이미, 표적 기록은 믿게 + 얻게 하기 위해서 이다. 요한복음의 어떤 내용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이다. 나는…….이다. 신성에 관한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스스로 나타낸 것이 에고 에이미이다.
    1) 요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다 / 떡은 구약의 베들레헴의 문제해결을 말한다.
    2) 요 8:12 세상의 빛
    3) 요 10:7 양의 문
    4)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다.
    5) 요 11:25 부활이요 생명이다.
    6) 요 14:6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7) 요 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표적의 목적은 한 가지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믿게+얻게 하려고 하는 목적이다. 요한복음 자체가 믿게, 얻게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중심이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한, 산 예배를 드리는 것이 사도바울의 예배관이다. 기독교는 예배의 종교이다. 구약은 제사로 예배드리며 죽은 짐승으로 제물로 드렸다. 신약은 살아있는 몸으로 드려야 한다. 예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5강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1. 본질의 회복이 필요한 시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카네이션 하셨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죄는 없으시다)이시다. 예수님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은 다르다. 인간의 죽음은 수동적인 죽음이다. 영혼을 누군가가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수동태 죽음으로 passive death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능동태의 죽음이다. 여기에서 확실한 신앙이 있어야 한다. 주님을 죽였다는 것은 육체를 말하며 주님 안의 영혼은 데리고 간 것이 아니다. 주님 의 영혼은 스스로 떠난 것이다. 주님의 죽음은 온 인류를 위한 예언 성취이며 율법의 완성이다. 그것이 십자가인데 주님 스스로 영혼을 데리고 나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심은 죽은 몸이 시공을 초월해서 있는 것이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또는 제자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 문 열지 않고 들어가신 것이다. 죽기 전에는 육체의 공간 제한이 있었으나 부활 후에는 시공의 초월이 있으신 것이다. 에고 에이미, I am 신적 문장으로 내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2. 요한복음의 목적 : 요 20:30-31
    7가지 표적
    3.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가?
    1) 믿게 – 예수그리스도 :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31).
    사도 요한은 90이 넘게 살았으며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보았다. 예수님의 형제들조차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다. 부활하신 후에 알게 되었다.
    2) 얻게 – 영생 : 영생을 얻게 하려 함(31절)
    앞으로의 신학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요한복음을 제대로 배워야 본질을 찾을 수 있다.
    4.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
    과학 – 우주의 기원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의 문제가 무너지고 있다. 천지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과학적으로 우주의 기원이 어떻게 되었는가? 미국 신학이 창세기 1-3장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의학 – 생명의 기원
    생명의 기원을 즉 인간 생명의 문제를 인간이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의학의 지향목적이 어디인가? 하나님은 없다고 증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생명공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AI 안에 영혼이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는데 AI 안에 영이 들어갈 수 있는가? 하나님은 영이신데 증명할 수 있는가? AI는 영의 문제로 해결 할 수 없다. 과학자도 설명 못한다. 과학자가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을 설명해도 인간의 Final의 해답은 될 수 없다. 그러면 기독교와 과학이 무엇이 다른가? 과학자들이 Starting point를 찾아가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의 방향과 목적과 의지가 잘못된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찾기 위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Starting point를 넘어서 영원의 문제 Eternal 과학이든 생명공학이든 영원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생명 시작의 Starting point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관심은 영원의 문제이다. 죽음과 무덤 너머의 문제이다. 신앙은 과학과 다르며 영원에 대한 문제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이며 죽음은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과학의 Starting point를 넘어서 영원에 대한 문제를 믿는 것이다.
    5. 결론: 요 20:30-31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오신 것은 인간이 알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 영원에 대한 문제이다. 영원 문제의 해결이 기독교의 목적이다. 사도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즉 영원의 문제를 믿게 하고 얻게 하는 것이다.
    Better World는 모든 지식의 목적이지 신앙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가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두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과학도 필요하나 목적이나 방향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과학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은 도구이다. 기독교는 영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과학도 검증이다. 그러나 진리는 믿느냐 안 믿느냐이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우주의 역사가 요한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6강 모세오경과 시편

    창세기 1-2장 더 나아가서 3장에 관한 역사적인 흐름은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한다. 전통신학에서는 답변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태초에 “뻬레쉬트”가 무슨 뜻인가? 성경에 3번 나오다. 창 1:1 태초에 – 우주가 시작하는 공간의 출발점을 말한다. 요 1:1 태초에 – 아르케, 우주가 시작할 때에 예수라면 예수의 영원성이 사라진다. 요1서 1 태초에 – 아르케. 신약의 아르케는 두 가지로 또 달라진다. 이 시대는 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도(목적, 계획, 뜻)가 있다. Gods Desire
    하나님은 영이시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계시라는 도구이다. 계시는 Revelatio 벗긴다는 뜻이다. 성경은 1500여 년간 40여명의 성경기자를 통해 하나님의 의도를 벗겨주셨다. 성경 66권중에 시편은 5권으로 150편이다, 시편의 내용이 수집되고 완성되기는 천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권 : 1-41편 – 창세기. 창조 + 사람.
    2권 : 42-72편 – 출애굽기. 해방 + 구속
    3권 : 73-89편 – 레위기. 성소 + 예배
    4권 : 90-106편 – 민수기. 방랑 + 고난
    5권 : 107-150편 – 신명기. 율법 + 찬양
    왜 시편이 1000년 동안 기록되었나?
    모세오경에 시편을 맞추기 위해서 오랜 시간 기록되었고 흩어진 자료를 취합했다. 시편은 모세오경의 생활주석이다. 시편의 각권 내용과 모세오경이 연결되어짐을 말해주어야 한다. 시편 안에 모세오경이 녹아져 있기 때문에 시편을 암송해야 모세오경을 끝내는 것이 된다.
    시편 4편
    시편 4편은 어릴 때 많이 암송한다. 유대인의 기도는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특히 위의 시편은 저녁에 잠들기 전에 암송하는 것으로 기도이다.
    시편 5편
    시편 5편은 새벽 여명의 기도이다. 히브리인들은 12절을 암송하면서 기도한다. 마음에 새기고 하야한다.
    테필라와 테필린
    기도는 테필라에서 왔고 테필린은 기도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와 히브리인의 기도는 다르다, 히브리인들은 말씀을 새기는 것이 기도이다. 찬양도 부르면 기도이다.

    고난의 문제 90-106편
    고난의 문제는 민수기와 더불어 위의 시편을 연결해준다.
    선생을 통칭하여 Rab라고 하며 더 높은 선생을 Rabbi 그 보다 더 높은 선생은 Rabban이라고 하며 가장 높은 자리의 선생을 Rambam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일한 람밤은 ‘마이모니데스’이며 그는 토라에서 하라 do 248가지ㅡ 하지마라 do not 365가지 총 613개의 계명을 분류해 내었던 사람이다.

    7강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이해를 위한 창세기 1장 1절 연구-1

    하나님의 의도를 찾기 위해 창세기 1:1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브리어로 “뻬레쉬트 바라 엘로힘 하샤마임 웨에트 하아레츠. 한국말로 해석이 안 되니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1. 뻬레쉬트 – 태초에
    창 1:1절의 태초에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를 말한다. 우주 만물 이전은 창세기가 다루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경험하는 우주 만물의 시작이다. 참고로 요한복음 1:1절의 태초는 인간이 계산 할 수 없는 영원의 출발점을 말한다.
    창 1:1절은 인간이 계속 찾아가는 태초이며 화석이나 노아의 홍수, 그랜드 캐년과 같은 것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요한복음 1:1절의 태초는 인간이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세계이다. 즉 하나님만이 아시는 태초를 말하며 이것은 믿느냐 민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과학이 말하는 종말과 성경의 종말이 다르다
    과학은 지구 온난화와 같이 지구의 대변혁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지만 성경의 종말은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져야 종말이 오게 된다.

    |—고토회복—|—복음전파—|—종말전쟁—|
    1. 고토 회복
    1) 땅 회복(선민, Chosen people)
    하나님께서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한 땅이다. 구약은 이루어졌고 신약에서 이스라엘이 선민의 나라로 Chosen people이 해결되어야 한다. 시도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요한이 요한계시록 7장에서 선민의 마지막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끝나야 끝이 난다. 고토 회복이 되려면 땅이 회복되어져야 하고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한다.
    2) Diaspora 유대인 회복
    AD 70년 이후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은 흩어졌다. 제 3성전을 새로 지어야 한다. 제 3성전이 완성되면 예언이 완성되고 유대인이 돌아온다. 땅과 유대인들이 돌아와야 고토가 회복된다.
    3) 제사, 예배 회복
    솔로몬 시대, 스룹바벨 시대, 제 3성전 시대 기독교로 유대인들이 돌아온다. 제 3성전은 이슬람권이 절대 반대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자기 목적과 성전의 문제를 해결했다. 제 3성전이 지어질 때 3차 전쟁이 일어난다.
    2. 복음전파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을 찾으면 끝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예언이 성취되어야 끝이 온다. 아직도 전 세계 34%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한다.
    3. 종말전쟁
    종말전쟁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을 치려한다. 주변의 동맹들이 연합군을 맺고 연합군의 주모자는 곡과 마곡이다. 곡이 전체의 왕이 된다. 겔 38:2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성경에서 곡과 마곡의 전쟁이 종말 전쟁이다. 이 때 제 3성전이 세워진다. 성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이때에 주님이 눈앞에 와 있다, 하나님의 의도가 이루어져야 이 땅에 끝이 있다.

    8강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이해를 위한 창세기 1장 1절 연구-2

    2. 빠라 – 창조
    1) 질서를 만들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지은 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를 깨드린 죄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수직적인 관계를 깨드린 것이다.
    2) 창조의 3가지 단어
    1> 빠라 – 무에서 유로 만드는 창조. 성경의 창조. Creato(창조) ex(from) Nihilo(무).
    2> 아사 – 유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 재창조,
    3> 야체르 – 사람을 창조할 때 창조.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생기의 원어의 뜻은 숨이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니 흙으로 만든 사람이 생령 즉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3. 엘로힘 – 하나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81가지이다. 구절마다 가능마다 다르다. 이름에 따라서 문장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 이름 엘로힘은 복수이다. 엘로힘은 이방신들에게도 사용하였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하나님께는 사용하면 안 된다. 삼위일체는 구약은 희미하나 신약은 분명하다.
    1) 창 1:26 :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형상, 모양대로.
    우리가 우리는 복수이다. 삼위는 세 가지 위치를 말한다. 아버지의 위치, 아들의 위치, 성령의 위치를 말한다. 일체는 위치가 셋인데 본질은 essence 하나이다. 다시 말해서 3 person 인격은 셋인데 본질은 하나이다. 이것이 2000년 동안 내린 결론이다.
    2) 마 28:19-20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셋인데 복수이며 이름은 하나 단수형이다. 즉 본질은 하나이다. 라는 것이다.
    3) 고후13:13 : 주 예수 그리스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4. 하솨마임 웨엩 하아렛츠 – 천지를
    하솨마임은 하늘들, 천들이다. 복수형이다. 지구가 있고 하늘이 있으며 태양계가 있고 우주가 있는 곳을 말한다. 태양계의 하늘보다 원어는 우주를 말한다. 그 위에 대양이 깊은 위에 있는데 종말에 대양의 비가 쏟아질 것이다. 노아의 비는 지구 위의 비이며 종말에는 대양에서의 비이다. 하아렛츠는 지구를 가리키는 땅을 말한다.
    하나님의 눈은 땅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눈이 머물다. The image of God. 기독교 세계관이 하늘들까지 넓혀져야 한다. 우주가 끝나는 지점에서 영원까지 가야 한다.

    – 전체 소감문 –

    요한복음의 서론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의도, 계획, 목적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즉 성경을 제대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사복음서에서 요한복음은 독자적인 내용이 92%가 되면서 요한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수한 자료들과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을 통해 성경 창세기로부터 전체의 스펙트럼을 조망해 보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예배란 무엇인가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나 그러나 그러한 사람을 찾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심 산에서의 예배와 예루살렘의 예배를 비교하며 그 예배의 특징과 근원들을 잘 설명해 주심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의 예배를 바라보면서 너무나 형식화 되었고 오히려 예전과 예식을 생각하며 – 물론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 점점 가톨릭화 되어가는 모습들도 볼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존 장로교에는 말씀 사역에 치우친 부분이 있었으며 오순절 교회나 감리교에는 성령 사역에 치우쳐진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령 사역과 말씀 사역 이 두 가지를 함께 군형 있게 이끌고 나가야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역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인 예배의 개념을 바꾸신 주님처럼 오늘 한국교회의 예배가 바꾸어지길 소망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우리는 예배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예배를 얼마나 세련되게 드려야 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즉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자를 찾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이를 구체화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말씀하고 있다. 예배 속에 하나님을 기쁘시도록 하는지, 거룩한 예배인지, 살아있는 제물인지를 살펴야 한다. 몸은 있으나 마음은 다른 데에 가서 있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며 흠이 없는 순전한 살아있는 예배로 한국교회가 변화되며 세계를 복음화 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전체 내용이 더욱 명확해진다. 믿게 하고 얻게 하려고 하는 목적이 요한복음을 풀어나가는 전체의 torch가 되는 것은 더욱 확실하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고 있으며 또한 이를 통해 영생을 얻게 하고자하는 구속의 뜻이 있는 것이다. 표면적인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이면적 의미를 깊이 살펴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대하신 뜻과 은혜를 기억하고 회상하며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 세상 문화와 과학 등 전반적인 학문이 이미 사단의 노리개 감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니체도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전반적인 문화와 과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존재에 대한 부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위치와 자리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천지창조 즉 태초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이에 대한 답변과 항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한 경점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어떻게 영원의 개념을 알 수 있겠는가 만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드러났고 보여 졌으며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부인하는 것 자체가 무신론이요 비 신앙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밝히 알아야 할 것이며 영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확고한 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세오경과 시편의 각 권의 내용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 시편의 해석을 여러 가지 하고 있지만 모세오경과 시편의 분류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고(이미 해석된 것이지만) 적용하는 것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강의 내용이 파편적으로 이루어져서 강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든다.
    ‘태초에’라는 창세기와 요한복음의 의미를 찾아보며 우주의 기원과 영원의 문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을 찾으면 이 세계에 종말이 올 것이다 라고 하며 지구의 환경과 대변혁을 통해 종말이 올 것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다. 고토회복과 복음전파 종말전쟁을 통하여 이 땅에 종말이 올 것을 말씀하고 있다. 종말론에 대해 좀 더 실제적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도와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도록 하게 된다.
    계속해서 창 1:1절에 나타난 태초에 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태초의 개념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해를 접근하면서 그 깊이와 넓이와 이해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 우주의 기원에서 영원까지 나아가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행성 가운데 지구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이곳에 머물게 하신 것은 크나큰 은혜요 감사이며 영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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