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사고 민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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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3강 하나님 탄식(11장)

    민수기에서 원망과 불평이 자세히 나오는 것이 민 11-20장이다. 민 11:1-3절에서 다바르 즉 하나님의 말씀은 첫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 다바르를 사용한다. 탄식과 간구하는 기도이다. 둘째, 인간을 향한 다바르가 있다. 원망과 불평을 말한다. 다바흐라고 사용하는데 가나안 정탐에서 10명이 악평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다바흐로 인하여 모두 죽게 된다. 20세 이상으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갈렙 밖에 없었다. 민수기를 한마디로 하면 다바르이다. 원망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고전 10장에 이스라엘이 멸망한 4가지 이유가 나오는데 원망 다바흐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토다 라바’해야 한다. 민 11장은 원망하는 그들에 대해 ‘여호와의 탄식장’이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불쾌하셔서 진영 끝까지 불사르신다. “들으시고” 불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불을 내리신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신다. 십계명의 거짓과 살인을 같은 수준에서 다루신다.
    하브루타의 출발점이 신 6장이다. 이스라엘 교육에서 유대인의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나 성경을 정확이 알고 분별하면 시류에 흘러가지 않는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면 안 된다. 가장 심각한 것이 원망과 불평임을 모른다. 산상수훈에서도 형제들을 라가라 미련한자라 하면 지옥 불에 떨어진다. 오늘날 자녀들을 보면 욕이 다반사이다. 일상이 타락했다. 실제 삶에 있어서 산 제물로 드리는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
    본문의 원망을 ‘아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뜻은 첫째, 마음에 깊이 담고 있다. 둘째, 마음에서 밖으로 출발했다. 셋째,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넷째, 감정에 실린 말을 쏟아 낸다.
    잠언에서도 혀를 조심하라 한다. 세치 혀로 인하여 인생의 수레바퀴를 망친다.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데 열 받아 안색이 변하여 돌로 쳐 아벨을 죽인다. 감정이 넘어서면 살인을 한다. 잠언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세우는 자 보다 낫다고 한다. 성숙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반응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이다. 지식이 많고 가르치는 자가 성숙한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가 성숙한 자이다. 심각한 죄가 ‘원망과 불평‘하는 것이다. 한나는 자식이 없음으로 인하여 남편의 위로를 받지 못했다. 성막에 가서 하나님께 대하여 탄식하며 울부짖는다. 엘리가 술 먹은 여자로 생각했다.
    이 시대 안 좋은 감정을 옆 사람이나 뒤에서 떠벌린다. 매스컴도 사실이 아닌데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하나님께 토로하고 풀어야 하는데 자꾸 사람에게 퍼트린다. 하나님께 다바르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으니 다바르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강력한 힘이다. 하나님께 말하기 전에 인간에게 하는 것은 화가 내게 미치는 것이다.
    한나가 하나님께 가지 않고 남편에게 갔다면 사무엘은 없었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풀 것인가?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 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11:3절 ‘다베라’는 불로 태워진 곳을 의미하며 원망 불평하게 되면 다 타서 죽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13살 전에 모세오경을 하야 시킨다. 하야를 모두 한 후에 말씀을 배운다. 민수기를 반복해서 배우니 유대 기독교인들 아이들의 마음에서 원망이 인생에 주는 피해를 알고 있다. 토대교회 성도들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는 것은 우리보다 다른 차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원망과 불평과 짜증은 불타 망하는 것이다.
    11:4절에 원망의 시작은 다른 인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 안에 있지만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이방인들을 말한다. 거룩을 모른 사람들로 불평과 원망은 전염성이 강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사람들과 언약하지 말고 쫓아내고 죽이라 했는데 땅 차지의 단순한 것에서 이는 영적인 문제이다. 여리고를 입 다물고 돌아라함은 침투가 불가능 하지만 마지막 날 부르짖을 때에 성이 무너졌다. 이때 가장 무서운 적은 이렇게 성을 돈다고 이것이 무너질까 벽이 얼마나 되는데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힘으로 난공불락의 성을 점령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한나처럼 넘지 못할 벽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원망의 근원지는 다른 인종이다.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원망하는 것이다. 홍해의 사건과 애굽 군대가 홍해에서 수장되었던 것을 다 잊어버렸다. 큰 사건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신앙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것이 우상이 되고 배금주의, 가족주의가 되어 버린다.
    민 11:4절에 탐욕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타바”인데 마음으로 품는다는 뜻이다. 욕심이 품어지는 순간, 탐하는 마음이 시작하여 불평과 원망이 나온다. 애굽에서 노예처럼 살았다는 것은 왜곡된 마음이다.
    민 11:10절에 “심히 크다”는 히브리어로 ‘하라’인데 이는 뜨거워져서 불태워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얼굴이 벌게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피눈물 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약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거듭나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한 삶을 살아도 부족한데 기도를 소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때로는 원망하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보냈던 뜨거웠던 경험이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화되어 버리고 돈과 명예를 쫓아간다.
    다윗이 언제 범죄 했는가? 전쟁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될 때 성 위를 지나다가 밧세바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할 때를 조심하여야 한다.
    민 11:11-15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상식적인 요구를 한다. 광야에 고기가 어디 있겠는가? 모세를 협박하고 모세는 나를 죽여 달라고 한다. 이들의 원망의 모습을 안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모세의 최초의 탄식의 마음이었다. 모세는 여기서 기도를 한다. 첫째, 나를 괴롭게 하시나이까? 둘째, 내게 맡기사 셋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넷째, 내게 배었나이까? 다섯째,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여섯째, 고기를 어디서 얻겠나이까? 일곱째,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여덟째,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할 때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갈 때 모범적인 모습이다. 하나님 앞에 토로를 안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절실하게 내 감정을 긍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사람에게 토로하면 관계가 깨어진다. 상대에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모세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기도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민 11:16-23절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첫째, 70명의 지도자를 데리고 올라오라. 둘째, 짐을 나누어 주겠다. 셋째, 고기주어 먹게 하겠다.(한 달간) 넷째, 응함의 여부를 보리라. 20절에 “……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23절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야드 “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것이다. 모세에게서 장로 70명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니 예언하며 엘닷과 메닷도 예언하였다. 이는 신약의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사건이며 만인제사장과 연결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시면서 보혜사를 기다리라 한 이후에 베드로와 바울이 쓰임을 받은 것이다.
    민 11:31절에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보내신다. 꿩과 종류이며 90cm 정도 쌓였다. 약 600만 마리 정도 되며 20-30km에 쌓였다. 개인이 열 호멜씩 모으는데 이는 120말, 2200리터의 양이 된다.
    33절에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재앙이 되어 죽었다.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는데 원망과 욕심의 무덤이 되었다. 탐욕으로 무덤이 된 곳이며 그들이 죽은 곳이다.
    원망과 불평의 아난이 아닌 토다, 감사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가나안 정탐으로 인하여 20살 이상 한명도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그들이 지금 올라가겠다고 했으나 모세는 올라가지 말라 함에도 갔을 때 대패하게 되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6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 말씀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모습이다. 어떤 것을 만날 때마다 낙심하고 좌절하지 말며 믿음으로 도전하여 나아가야 한다.

    원망과 불평은 너무나 빨리 습관화되어 버리다. 나쁜 것을 빨리 습득하듯 원망과 불평은 익숙해져서 그것이 죽음의 길인지도 모른 체 달려 나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원망과 불평이 있는가? 건강하지 못한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이로 말미암아 깨어지고 상처를 받으며 흐트러지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게 된다.
    오늘 우리에게 원망과 불평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것을 사람에게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했을 때 일어났던 사건들을 보며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어렸을 대부터 민수기를 배우며 원망이 십계명의 거짓과 살인과도 같은 수준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며 그들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교훈과 배움을 받기에 입술로 범죄로부터 나아가 마음의 범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앞에 다스려지는 것이다.
    원망과 불평은 삶과 신앙을 무너뜨리는 크나큰 죄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토로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아서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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