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사고 민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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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7강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18-19장)

    187. 네 직무를 다하라(민 18:1-7)
    하나님이 누구를 지도자로 삼으셨나가 중요하다. 이스라엘을 인도할 유일한 직분은 제사장이다. 백성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입과 발의 노릇을 하며 백성들을 위해 희생 제사를 드리고 예배하는 것,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중요한 직분이다. 그러한 일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제사장의 손발을 묶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레위의 직무의 한계(민 18:1-7)
    레위인의 직무의 한계는 분명하다. 제사장의 권위와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하며 레위인은 성소기구와 제단에 가까이 하면 안 된다. 직분을 넘어서면 죽는다. 제사장의 일과 레위 인을 구별하는 것은 열등이나 가치가 문제가 아닌 하나님이 인간을 택할 때에 하나님의 전적인 권한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한 것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한 것도 하나님의 권한이다. 인간은 아론이 나이가 많고 실수가 많으며 젊고 유능한 고라가 낫다는 생각은 인간의 생각이며 우리의 판단이다. 다윗도 형들이 왕이 되게 적합하다고 판단했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정을 안했다. 다윗이 왔을 때에 이가 그다. 누가 선택받았다고 해서 피해의식은 없으며 해코지 하지 않으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였다. 그는 겸손하였으며 그를 받들어 섬겼다.
    네 직무를 다하라(말 18:6-7)
    직무의 임명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말하는 이는 모세이며 따르는 이는 아론이다. 하나님의 주권인정이 중요하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서를 분명히 세웠다. 만약에 지성소와 성소를 제사장이 담당하고 그 외에 일을 레위 인들에게 맡겨주었다면 충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직무와 역할이 있으며 레위 인들을 제사장의 수하에 두어서 돕게 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안에 질서를 분명하게 하셨다. 레위 인들을 선물로 주셨다. 제사장 직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주셨다. 모세와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었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188. 제사장의 분깃(민 18:8-14)
    제사장이나 레위 인들에게는 분깃이 없다. 소출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직책을 맡기면서 물질적인 분깃도 마련하셨다. 다른 지파는 분깃이 있다. 레위기에서 제사장이 성막의 일을 하고 제단에서 분깃을 얻었다. 처음 나는 곳이나 짐승 등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겠다. 12지파의 분깃이 제사장의 분깃이 되게 하겠다. 신약의 바울도 딤전 5:18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교회에서 일하는 것, 즉 성전에서 일하는 것에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직무에 대해 일할 때 그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다. 이스라엘의 48개 성 중에 6개의 도피성외에 42개의 성에 레위 인들을 흩으심은 그 곳에서 예배드리며 제사의 직무를 다하게 하기 위함이다. 백성들의 십일조를 레위 인들이 받고 레위 인들의 십일조를 제사장이 받는다.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절기에 제사를 드리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제사장과 레위 인들이 먹을 것이 없어진다. 그러면 제사장이나 레위 인들이 성에 머물지 않고 일하러 간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 집에 제사장을 썼고 축복은 하나 잘못된 것을 말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타락하고 돈 문제 때문이다. 하나님의 제도에는 문제가 없으나 인간의 죄의 문제이다. 교회가 성전이며 교회는 성막에서 하는 일을 그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성전주의, 율법주의는 위험하다. 제사장은 중요하나 제사장주의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예배당과 제사장을 우상으로 삼는다. 돈의 비리, 여기에서 오는 반감이 성전과 제사장을 없애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뿌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으면 거룩함을 잃어버린다, 뿌리를 바탕으로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 교회라 한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고전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성전과 제사장에 관한 메시지이다.

    189. 제사장과 그 가족이 먹을 음식(민 18:15-20)
    피와 기름은 뿌리고 불사르며 고기는 제사장에게 돌린다. 거제 물은 제사장에게 돌리며 제사는 죄 사함의 제물 일부를 제사장과 그 집안의 음식으로 돌린다. 하나님의 지혜는 놀랍다. 영적인 구속과 물질이 구분되지 않는다.

    소금언약으로 서명하신 하나님(민 18:19-20)
    소금언약은 하나님의 최종 서명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소금은 협정, 영구, 견고, 언약의 신실함을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서명하기 전에 소금으로 표현한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영적으로 섬기고 나머지 지파는 육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이다. 사도 바울도 성전에서 일하는 자는 성전에서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다만 현대교회가 지나치게 악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과 연결하여 만들어 주셨다. 레위 인이 일을 못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못하면 학교 운영도 안 되고 다음세대 교육도 안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교육학은 에스라 때에 교육이 확정 되었다. 이스라엘 교육사에서 에스라가 중요하다
    내가 네 분깃이다(민 18:20).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190. 십일조(민 18:21-24)
    이스라엘의 십일조는 레위 인들에게 주고 레위 인들의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주어 회막의 일을 하도록 한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 규정이 중요하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며 레위 인에게 주어진다.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민 18:22-24)
    십일조의 사용처(민 18:21-26)
    191. 십일조의 십일조(민 18:25-32)
    십일조는 레위인의 보수이며 제사장 집안의 영유이다.

    17-2. 정결케 하라(19장)

    192. 정결케 하라(민 19:1-3)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유지하는 것은 정결 하는 것이다. 물이 영적인 의미는 노아시대에는 물로 심판을 했지만 정결케 하는 부분의 상징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일반 집에 손과 발을 씻는 정결 탕이 있다. 마을 어귀에는 정결 탕을 만들어 둔다, 이스라엘에는 물이 정결과 속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결예식은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예식이다. 이 시대의 교회도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얻어야 한다, 물과 피로 정결해야 한다, 왜곡된 은혜주의 가 문제이다. 믿음은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이시며 회개하며 나아온 자여야 한다. 요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다. 주검으로 인한 부정을 일시적으로 깨끗하게 했다. 하나님 앞에 매일 회개하며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붉은 암송아지를 희생하며 희생제와 속죄제는 다르다.

    193. 정결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민 19:4-8)
    물은 씻는 기능을 한다. 이는 예수님의 정결함을 예표 한다. 하나님을 만나기전에 깨끗해지길 원한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의도적으로 아침과 저녁에 씻는다. 매일 회개하며 가족 간의 잘못과 용서를 구한다. 이러한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사라진 부분이 많다. 이스라엘의 문화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가 많다. 회개의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식, 근신, 권면, 일련의 하나의 과정이 필요하다,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는 죄의 경중에 따라 과정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4. 정결(민 19:6, 9)
    백향목은 생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상징이다. 우슬초와 홍색 실은 강한 생명력을 말한다. 정결에서 물로 씻는 것은 7일 후 제물로 드렸다.

    195. 예수님의 피로 완성된 정결예식(민 19:10-22)
    정결 탕에서 손을 씻는 것은 육과 영적 정결과 연결되어져 있다. 이스라엘 전통에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로마 총독도 손을 씻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피로 정결예식이 완성되어진다. 예수님의 피를 기억하고 상기해야 한다.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에서도 기억하라 자카르라는 단어이다. 히브리서 9:11-14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구약의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서 예수님에게 적용하고 있다.

    17-3. 가데스에서 생긴 일(20장)
    1-13 가데스에서 생긴 일(출17:1-7)
    14-21 에돔이 이스라엘의 통과를 거절하다
    22-29 아론의 죽음

    196. 다시 그 자리(민 20:1)
    첫째 달의 의미는 출애굽 40년째 아빕월 1월 달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미리암이 죽고 이는 아론의 죽음을 예고하며 40년 광야의 마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97. 윗세대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신세대(민 20:2-4)
    40년이 지난 후에도 또 불평을 하고 있다. 민수기는 “따바르”이다.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의 스토리이다. 숫자 기록도 있지만…… 신광야에 ‘신’이란 새로운 것이 아닌 ‘찐’ 찌르다, 울퉁불퉁한 바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8. 모세와 다투는 이들(민 20:2-3)
    물이 없어서 먹고 마시는 부분을 뛰어넘지 못했다. 윗세대에서 못 배우면 다음 세대에 희망이 없다. 다툰다는 루브의 말은 말다툼, 손을 뒤집어 놓다, 막무가내로 다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에서는 지도자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에게 온유함으로 권고해야 한다. 원망이나 불평 속에서 지도자에 대한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을 향해 원망치 말고 하나님께 탄식하라(민 20:4-5)
    사람에게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탄식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따바르 해야 한다.

    199. 네가 명령하라 내가 일하겠다(민 20:6-9).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고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모세는 반석도 순종한다. 신약에 바다도 잠잠케 하며 죽은 자도 일어나게 하신다.

    200. 40년 모세의 반복되는 사역(민 20:10-12)
    120세의 모세는 늙은 지도자였고 젊은 사람들이 원망하자 모세는 낙담한다. 11절에 ‘두 번 치니’ 이는 40년 여정 중에 결정적인 실수이다. 이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징계이며 모세도 예외가 아니다. 전적인 순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석은 그리스도(민 20:11; 고전 10:4)
    예수님께서 생명의 물이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201. 하나님을 믿지 않은 모세(민 20:11-12)
    두 번 내리친 사건에 대해 거룩함을 나타내라 잃어버린 것이다. 여호수아가 그 일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일에 다툼과 대적하는 일로 나타난다.
    거룩함을 나타내라!(민 20:12-13)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드리지 못하는 모세(민 20:10-13)
    하나님을 향해 최초로 대적한 모세(민 20:3, 13)

    202.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민 20:14-21)
    에돔과 이스라엘은 형제지간이며 외교문서 형식으로 기록하며 발신인은 형제, 이스라엘 형편의 내용과 정중하며 간절하고 공식 문서로 형제의 나라로 표현한다. 그러나 거절한다. 이 후로 에돔과 격렬한 전투가 있으며 에돔과 전쟁(심판)은 오바댜에 나타난다. 형제에게 악을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이다.

    203. 아론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고(민 20:22-26)
    아론과 예수님(민 20:25-26)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 역할을 하신다. 민 35:38 도피성의 죄인들이 해방되는 것 신약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다. 아론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옷을 벗은 아론(민 20:25-26)
    옷 벗음은 죽음을 상징한다, 조상에게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사명 자는 생이 마감될 때까지 감당해야 한다. 바울도 순교하기 전까지 감옥에 있을 때에도 사명을 감당했다. 20장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 할 수 있다.

    – 소감문 –
    교회의 직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한이다. 교회 안의 영적인 질서를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전주의, 율법주의, 제사장주의로 말미암는 폐단으로 인하여 무교회주의, 무직분주의 등 교회 안에 직분이 필요 없으며 교회도 필요 없다는 무교회주의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는 구약 성전의 뿌리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며 그 뿌리를 깊이 연구해야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직무를 주셨을 때에는 그 직무에 따르는 책임 뿐 만 아니라 의식주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시대를 생각해 보면 목회자가 온전히 목회의 일만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개척교회라든지 어려운 교회의 목회자들은 주중에는 경제활동을 하고 주일에는 목회활동을 하는 등 2가지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함에도 현실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서 거리로 나가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교단이 상당히 숙고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원망과 불평은 세대를 이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희망이 없다. 앞 선 세대들의 실패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역사의식이야 말로 참된 교육의 일로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한 중에서도 모세도 똑같이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거룩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징계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고 있다. 미리암의 죽음과 아론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실함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정결함이며 거룩함임을 알아서 늘 깨끗하고 거룩한 영혼의 그릇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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