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사고 민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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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강 미리암의 비방과 갈렙의 믿음(12-13장)

    민수기 12장에서부터 모세를 향한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이 나온다. 다바르 관련 부분으로서 그 이유는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이다. 어떤 학자들의 견해로는 새 아내를 취했다고도 하고 있다. 미라암이 사건의 주동자로 성경에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은 좀 더 주도적인 부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민12:1절에 “……비방하니~” 히브리어 “다바흐” 여성형 의미로 미리암에게 초첨이 맞춰있으며 아론은 단순 가담자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비방하는 것은 생각하는 결과이며 마음에서 입 밖으로 나오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민12:2절에 미리암의 비방의 동기의 목적이 나오는데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리암은 이 사건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이야기 하셨는가? 그녀의 원망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평시에 모세에 대해서 하나님께 갖고 있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못가 하나님의 독보적인 위치와 하나님과의 독대에 대한 이런 것의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세우심은 하나님의 뜻이며 권한이며 그렇게 하신 것이다. 미라암의 시기심과 질투, 교만과 원망, 비방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 하나님은 미리암의 말을 들으시는데 심각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지를 가지고 모세의 도전에 대한 직접적인 징계를 다루심으로 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사람의 말은 입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 이 밖에 나오는 것이다. 마음의 청결함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원망, 비방, 저주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
    민 12:3절에 “온유함”은 히브리어 ‘아나브’이다. 가난과 관련되어 있으며 낮추다, 괴롭힘 당하다. 겸손하다는 뜻이 있다. 본문을 원어로 번역하면 “매우 온유하다, 그 온유함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온유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에 대해 어떤 비방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난함, 하나님을 만나고 뜻을 행하는 덕목이 온유와 겸손이다.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아나브가 사라지면 교만이 온다. 미리암은 단순히 모세가 구스여인을 데리고 온 것을 의로움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리암의 죄 된 부분을 건드는 것이다.
    민 12:4-8에서 하나님은 세 사람을 불러 직접 강림하셔서 심각하게 다루시고 진노하신다. 6절에 원문은 “제발 내 말을 들으라” 부사를 첨가하신다. 하나님의 간곡함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모세의 위치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하심으로 모세의 입장에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민 12:7절에 “……내 온 집……”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며 “충성”은 히브리어 ‘네엠만’ 진실하다는 ‘아만’에서 유래되었다. 모세는 하나님께 최선의 충성을 다하였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였다. 바울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서…..” 디모데는 “충성된 일군으로” 하나님은 착하고 충성된 자를 기뻐하시고 쓰신다.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 아래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는 충성이 무시되는 단어이다. 충성스럽다는 표현은 우리가 모자란다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과의 대면은 그의 충성스러움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의 7교회는 동일하게 사랑했지만 적은 믿음으로 충성된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교회도 있었다. 먼저 되었는데 나중 된 모습이다.
    민 12:8절에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은 모세를 알고 충성되기 때문에 홀로 울었는지 모른다. 이스라엘이 10가지 재앙, 죽음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했을 것이다. 백성들이 돌을 들어 죽이려 할 때에도 11장에 나를 죽여서 나를 벗어나게 해주시라는 그의 마음에 무거움은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나아갔다. 그 대 하나님이 모세를 변호해 주었다. 모세는 나에게 특별하다. 감히 비방하면 책망한다. 하나님께 충성된 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특별히 보신다. 충성, 겸손 그 마음에 하나님을 지나치거나 기억하지 못하지 않으신다. 미리암은 한 술 더 떠서 너와 내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선지자 급과 다르다. 모세의 권위를 하나님이 존중하고 세워주신다. 세운 권위에 대해서 비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께 대하듯 했으며 바울은 주인을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 하며 자녀는 부모를 하나님처럼 대해야 한다. 모세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나 미리암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가하며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있었다.
    민 12:9-10 미리암을 징계로 나병을 생기게 한다. 하나님은 재판장으로 판단을 내리신다. 형을 내리신다. 이 세상은 비방, 원망이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매우 심각한 죄이다. 말 한다마디 품은 마음의 죄 값으로 나병이 생긴다. 두려워해야 한다. 권위자의 비방은 매우 심각하다. 아론은 나병은 판별하는 직무를 가지고 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다. 어릴 때 죄에 대한 심각성을 알게 해야 한다. 비방하는 문제, 권위에 대한 도전 문제는 이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민 12:11-12 “내 주여” 아론이 모세를 다르게 부른다. 미리암을 보면서 종이 주인에게 부르는 호칭을 하고 있다. 하나님처럼 대하고 있다. 원래 그렇게 해야 되는데 말이다.
    민 12:13 “그를 고쳐 주옵소서” 모세의 기도, 제발 청합니다. 급박한 기도이다.
    민 12:14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당시 이스라엘의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이다. 아버지나 형제에게 침을 뱉는 것은 모욕이며 큰 죄이다. 신 25:9절의 수욕의 기간 하나님의 긍휼을 베푸신다. 7일 진영 밖에서 참회하며 정결예식을 거쳐야 한다. 레 14장을 적용한다. 죄 범한 것은 공동체로 다루신다. 진정한 회개의 자리에 서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리암을 이렇게 다루시는 것은 원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시대 교회 공동체에서는 징계, 권징이 모두 무너졌다. 하나님은 이 일로 행군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전체 심각한 일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볼 수 있다. 영적 권위에 대한 중요한 부분이다. 미리암의 다바르를 통해 모세의 기도로 고친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 13:1-14:45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민 13장은 분기점 사건으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는 사건이다. 가장 불행스러운 사건이다. 이 일을 통해 당시 어른들은 가나안에 입구하지 못한다. 광야 40년의 사형언도로 죽음에 이르게 되고 새로운 세대에게 기회를 준다. 불신앙과 원망과 믿음 없음, 원망과 불평의 결과가 치명적이다. 안개와 같은 세상,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믿음 없이 갈 때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징계하신다.
    신 1:19-35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약속한 땅은 정탐하라는 것이 아니라 차지하라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정탐꾼을 보낸다. 믿음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믿음으로 가서 보라는 것인데 이 백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공격을 잘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다. 이것이 죄이다. 믿음으로 도전했다면 40년 광야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원망 불평이 아니라 감사로 나가야 한다. 상식으로는 정탐이 당연하나 하나님 말씀에는 답사가 필요 없다. 하나님 말씀 앞에 상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민 13:3-16 각 지파의 대표를 뽑아 정탐을 출발한다. 신 1:28절에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부정적인 말리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여호수아와 갈렙, 모세는 다르다. 그러나 10명의 말에 현혹되어서 믿음이 흔들린다. 이들 보고를 통해 무리에게 영향을 주고 결국 40년간 광야에서 죽음 맞이하게 된다. 성경은 지도자에게 특별한 혜택과 약속 권위를 주신다. 지도자가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고 백성들이 비교하지 않게 금해야 한다. 지파들의 대표 이름을 왜 기록했을까? 우리의 삶, 말,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선생 되기를 조심하라 말씀하신다. 선생 된 자 말 한마디에 지옥으로 가게 할 수도 있고 영혼을 살릴 수도 있고 천국으로 이끌 수도 있다. 지도자들이 죄를 짓고 잘못된 판단을 할 때 더 무거운 심판과 징계가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끝까지 쓰임 받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으시는가? 끝까지 충성하며 진실한 사람을 찾으신다. 아브라함에게는 노종이 있었고 바울에게는 디모데와의 관계이다.
    민 13:17-25 모세는 자세히 살피고 오라하였으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곳은 우리의 밥이다 말하였으나 다른 이들은 믿음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이란 단어 하나가 히브리서 전체를 관통한다. 상황과 여건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이다.
    민 13:26-29 모세는 “담대하라” 지속적으로 용기를 가지라, 용맹스럽게 하라, 믿음으로 보고 오라고 하는데 모세는 이미 마음으로 가나안에 있으며 용기를 주고 권면하였다. 포도 한 송이가 4-5kg이며 모세는 기대와 부푼 꿈을 가지었으나 10명의 정탐꾼은 민 13:28절에 “~아니라” 히브리어로 ‘에페스’ 히브리어 불변사 키를 수반한다. 즉 불가능을 보고하는 것이다. 모세 당부와 다르게 믿음이 완전 위축이 되어오는 것이다. 갈렙은 취하자하나 나머지는 싸울 수 업쇼다 악평한다, 신장이 장대하고 거인이며 비교가 안 된다. 결국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갈렙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환경과 상황을 바라본다. 10가지 재앙을 통해 길을 열어주시고 베드로가 물의를 걸었을 때 파도를 보고 물에 빠진다.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어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유라굴로 광풍에서 위가 가운데 추스르며 담대하게 이야기 한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다.
    악평은 ‘다바흐’ 마음에 ‘바브’ 부정한 것으로 가득한 상태이다. 갈렙은 믿음으로 외쳤다. 10명의 다바흐가 부정적으로 이스라엘 전체에 사로잡는다. 그때 갈렙이 믿음의 눈으로 보라는 말을 짓밟는다. 다바르로 넘어서 다바흐로 가게 되며 모든 것을 원망하게 된다.

    – 소감문 –
    미리암의 비방을 통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에서부터 입으로 결국은 행동으로 나오는 것을 보며 생각을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다. 모세를 대항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와 신앙 안에서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적인 질서를 지키며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된다. 즉 교회 안에는 영적인 질서가 있다는 것이며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날은 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하에 탈권위주의를 지향하며 모든 권위를 깨뜨려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신앙과 권위에서의 분명한 위치와 선의 정리가 필요하다. 미리암의 나병의 발병을 비방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게 한다. 무엇보다 모세는 이를 고쳐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원망하고 비방하고 불평하는 이에게 고난이 온다면 오히려 속이 시원하겠다는 그 마음의 한 칸에 바람이 잔재되어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모세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의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인내하면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자, 오직 하나님께 토로하는 가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본 강의를 통해서 믿음의 시야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준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신앙의 견지에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이 믿음으로부터 시작이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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