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교육학 & 뇌과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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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on “2강 말씀의 사람되기 위한 8가지

  1. 2강 하나님의 명령! 하야, 씨하흐, 다라쉬, 탈무딕 솨파트(디베이트), 아사, 라마드

    1. 하야
    신 6:6절에 “……새기고” 새기는 것이 하야이다. 성경에는 암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야와 솨난이 암송에 가까운 단어인데 유대인이 태어나면서부터 강보교육과 함께 이루어진다. 하야는 존재 가득 넘쳐나게 하다란 뜻이며 솨난은 뾰족한 것으로 찌른다는 의미이다.
    2. 하가(씨하흐)
    암송과 말씀을 반복해서 읊조리다. 라는 뜻이다. 가정과 학교와 공동체에서 반복해서 읊조린다. 시편 6편에 주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큐티보다 묵상하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위로 오는 깨달음이 있으며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 하야를 하다보면 씨하흐가 자연스럽게 된다.
    3. 다라쉬 : 연구
    성경을 연구할 때 주의해야하는 것은 첫째, 본문 원어의 이해가 필요하다. 원어 성경을 잘 모르면 번역된 성경은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원어적 바탕과 히브리적 성경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다라쉬의 뜻은 연구하고 찾고 찾다. 묻다, 예배하다는 의미가 있다. 다라쉬가 예배한다는 의미도 있다. 공부가 예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말씀을 사랑하고 공부해야 한다, 말씀을 명확하게 깨닫는 것이 예배다.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설교를 듣는 것은 10가지 중에 하나이다. 예배 부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으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연구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사신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 일주일에 절반은 예배 절반은 공부인데 예배가 중요하지만 예배가 모든 것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 유대인의 학습이 예배 의미를 찾아오는 것이다. 설교하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 연구는 예배이다.
    4. 디베이트 : 연구해서 토론해야 한다.
    학습이 암기, 이해력, 응용력을 생기도록 한다. 연구하고 다라쉬하며 디베이트를 할 때 생기는 것이다. 개인 연구 없이 토론 있을 수 없다. 탁월하게 만드는 방법이 다라쉬하고 디베이트 하는 방법이다.
    5. 아사 : 행함
    신구약이 강조하고 있는 믿음은 행함도 포함되는 것이다. 행함이 믿음을 완성하는 것이다. 믿음은 신뢰하다 의탁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야, 씨하흐, 연구와 토론을 하고 아사를 하지 않는다면 외식하는 것이며 아무 소용이 없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창 18:19절 중반 절에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마 28:1-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6. 라마드 : 가르친다.
    에스라 7: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솨난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라마드는 가르친다를 첨가한다. 이스라엘을 가르치기로 결심한다는 것이다. 가장 탁월한 공부는 가르칠 때 일어난다. 국영수라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는 것은 불순한 공부이다. 이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순수한 공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말씀연구 하야 안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 중심의 공부 즉 성경공부의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하야, 솨난, 가르치고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3살과 7살 이전에 이러한 패러다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히브리어 성경을 일게 하는 것은 언어는 주님 말씀 배우고 이해하는 도구이다. 기독교가 잃어버린 6가지를 회복해야 한다.

    – 소감문 –
    하야, 씨하흐, 다라쉬, 탈무딕 솨파트(디베이트), 아사, 라마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래야 우리가 살고 자녀들이 살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자녀들을 국영수의 지식교육으로 자꾸 내몰게 된다. 최근에 있었던 종편방송에서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상류층은 부의 대물림이 자녀들의 지식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 자식 교육에 온 힘을 쏟는다. 정보가 입시 성공의 열쇠가 된 것처럼 ‘고액 입시 코디네이터’들은 그들의 욕망을 재현해 주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과 부모들의 탐욕적인 욕망이 드러나며 모든 관계가 깨어져 버린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참 교육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교육이 지식의 교육으로 나아간다는 것에서 우리는 기독교 교육의 잃어버린 하나님의 명령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또한 실천하여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녀들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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