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교육학 & 뇌과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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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on “4강 솨파트(하브루타)에 대한 신구약 원어 이해

  1. 4강 디베이트에 대한 구역과 신약의 원어 이해

    디베이트의 방법 이해 이전에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의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는 것은 방향을 잘 잡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1. 구약
    1) 솨파트
    사 43: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 변론에 해당하는 단어로 왕상 8:32절에 “심판하사” 같은 단어로 스인다. 뜻은 재판하다, 법렬, 법도, 공의, 규범으로 정한 법, 법에 대한 규례를 솨파트라 한다. 심판, 판결, 벌, 소송제기, 변호, 논쟁하다의 의미이며 개역한글에서는 이를 “국문‘하다로 쓰였다. 역대하와 겔 7:3에 심판도 같은 의미로 쓰였다. 변론해서 의로운지 판결해내자, 다투다 라는 단어로도 쓰인다.

    2) 마짜
    사 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 다툰다, 논쟁하다, 토론하다, 투쟁하다 용어로 쓰인다.

    3) 리브
    욥 13: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욥 13: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 리브는 루브에서 나온 단어로 뒤흔들다, 붙잡다, 논쟁하다, 꾸짖다로 표현한다. 토론을 하다보면 자기 생각이 흔들린다. 자기 생각에 공격의 방어를 위해 맞다는 것을 논쟁한다. 흔들리는 일이 일어난다. 예를 들러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거친 불평이 나온다. 욥기 전체가 디베이트이다. 하나미과 친구들과 디베이트 하는 내용이 욥기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가 큰 자냐? 하는 질문은 기존 권력이나 힘이 아니다. 디베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제자들의 기존 가치 체계를 흔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정체성의 질문이다. 이에 대해 베드로가 답변한다. 사람의 생각과 너희 생각은 어떤가 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관점을 뒤흔들어 놓고 다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분으로 나아간다. 사3:3, 미6, 욥3:3 변론의 같은 의미이다.

    4) 딘
    욥 9: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삼하 19: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 다스리다, 재판한다, 판결한다, 질문한다, 주로 성경에 진리냐 아니냐의 사움으로 나타나며 법정에서 올바르냐 아니하냐로 쓰인다.

    5) 야카흐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올바르다, 상호 논증한다, 확신시키다, 정당화하다, 바로 잡다로 쓰인다. 위의 5가지 단어가 유사하게 쓰이나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렇지 않은 번역도 있다.

    2. 신약
    1) 쉬제케오
    막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막 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담후 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함께 조사한다, 토의한다, 논의한다. 헐뜯다의 의미로 쉬는 쉰(함께, with)의 의미로 제케오는 (제테오)라는 단어로 구하다, 묻다, 질문 한다의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2) 쉬제테시스
    행 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 질문, 토론, 논쟁이라는 단어로 쓰인다.

    3) 디알라기스모스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 유대사회에 변론과 논쟁은 일반화 되어 있다. 그들의 문하이다. 무엇이 진리이고 지혜로우냐?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즐겨하는 문화이다.

    4) 디알레고마이
    행 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유 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 철저하게 말하다. 논쟁하다, 토론하다의 의미로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질문한 것에서 요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이와 같은 질문이 논쟁거리이다. 유1:9절에서 마귀와 변론하는 것도 이와 같다.

    5) 디알로기조마이
    마 16:6-7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 철저하게 생각한다. 이야기 한다 보다 철저한 논의와 토론을 의미한다.

    6) 아나크리노, 판단하다
    행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판결한다, 강렬하게 논의한다, 재판하다의 의미이다. 히브리어 솨파트와 가까운 단어이다. 크리노의 단어가 재판한다, 통치한다, 판결한다의 의미이다. 행17:11절의 ‘상고’ 고전2:14의 ‘분별’이 해당된다.

    – 소감문 –
    디베이트에 관한 성경적인 어원을 살펴보며 히브리인들의 문화를 생각해 본다. 이들의 문화 자체가 디베이트 문화인 것을 보게 된다. 단순한 논쟁이 아닌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인 바른가를 분별하는 것으로 참된 것을 찾아가는 문화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는 토론의 문화가 아닌 상명하복의 문화를 유종의 미를 삼는 문화가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그럼으로써 창조적인 생각과 방법들은 사장되어져 버리고 획일화된 생각이 마치 바른 것과 같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복음에 있어서는 타협을 할 수는 없지만 신앙생활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는 것처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또한 우리가 가져야 할 일견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수를 인정하는 문화, 부족함을 인신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진리를 함께 찾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디베이트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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