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교육학 & 뇌과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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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on “6강 원어와 히브리적 사고로 본 배움, 가르침, 학습의 의미

  1. 6강 원어와 히브리적 사고로 본 배움, 가르침, 학습의 의미

    헬라적 접근과 히브리적 접근의 차이와 균형적인 이해
    이 시대의 교육은 헬라적인 접근방법의 요소가 많다. 세상의 교육이나 표현이 그렇다. 그러나 히브리적 사고와 배움의 학습은 차이가 많다. 헬라적인 교육은 아는 것과 행함이 분리가 된다. 나뉘고 단편적이며 히브리적인 사고의 교육방법은 통합 시키고 총체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믿음도 헬라적인 방법은 믿는다고 고백하면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 하지만 히브리적인 방법은 믿음은 히브리어 ‘아만’에서 나왔는데 이는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헬라어 ‘피스티스’도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고 의지하며 의탁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도 히브리어 ‘야다’에서 나온 단어인데 지식으로 안다의 개념이 아닌 삶으로 체험하여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다. 야고보도 행함이 없으면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다. 구원은 천국과 관련이 있다. 헬라식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믿는다는 고백에는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고난이 없다. 준행하고 지켜 행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신앙, 앎, 배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가짜이다. 신앙과 학습과 배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많이 아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적게 깨닫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단들은 깨달음 자체를 구원이다 말한다. 영지주의가 그렇다. 윤리와 도덕과 삶이 외면되는 것이다. 로마서와 야고보서도 다른 문서로 보았으나 히브리적인 사고에서는 분리가 아니라 하나이다. 구원의 시작으로부터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균형 잡힌 이해가 필요하다.
    교육할 때에도 오늘날은 모두가 분리되어 있다. 1세기에 가정이 중심이 되는 교육과 교회 안의 학교와 동일한 메시지에서 이어가면서 해야 한다. 교육은 학교와 가정과 교회가 하나 되고 세계관이 하나가 될 때에 바른 교육이 된다. 오늘날 학교는 학습은 되나 인성교육이 안 되고 신앙교육도 안 된다. 교회 교육도 가정 중심의 교육이 안 되고 가정을 서포터 하는 교육이 되지 않는다. 1세기에 초대교회에서 가정에서 어떻게 하는지, 학교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서 서서히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 유대인 크리스천 비율이 매우 높다. 유대인 2천년 동안 계속 성장하였다. 미국의 600만 명중에 300만 명이 크리스천이다. 이들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가정과 교회 교육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육 기반이 4세기 이후에는 잃어버렸다. 가정예배를 안 드리니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다. 주일학교도 고아들을 위해 만들었는데 부모들은 아이를 교회에 맡겨버렸다. 미국 학교도 기독교학교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속화되고 타락되어 예수가 구세주가 아니라고 타락하게 되었다. 이제 1세기의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과 교회의 모습도 돌아가야 한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일반 교육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가치로 도배된 교육이 전제되고 있다. 세속문화와 게임, 노출 등 하나님 없는 것으로 나아간다.
    교육 기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하고 나누는 모습은 강보교육이며 성경 모두를 배우고 중고등학교도 주석으로 배우며 이것이 원래의 교육이었다. 회복해야 하며 전도,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한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 중에 유대인이 가장 많다. 교육의 원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영국의 교회처럼 되어 버린다. 마지막 때에 중요하다. 우리 자녀들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 소감문 –
    우리는 그동안 헬라적인 사고에 의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공부하며 배워왔다. 그 영향으로 신앙조차도 이중적인 모습이었음을 알게 된다. 삶과 신앙이 통합되지 않는 이원적인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초대교회의 교육법을 속히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살고 교회와 민족이 살고 나라가 살며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세워질 것이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삼중 체계의 아래서 말씀으로 서로 세워주고 가정을 도와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함으로 그 어떤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자녀들을 세워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일반 교육학의 발달단계를 생각하면서 학년별로 모두 갈라놓았다. 그리하면서 교육체계의 단절이 일어나면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그저 교회에 던져놓으면 교육이 될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교육방법으로 속히 돌아가서 그 체계를 바꾸고 에스라 때 시작된 원래의 교육 방법으로 돌아갈 때 우리 자녀들이 살게 되고 교회가 회복되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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